01 영어의 띄어쓰기

영어와 한국어의 가장 큰 차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는 띄어쓰기 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어릴 적 국어 시간에 배웠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라는 문장 생각나시나요? 

물론 문맥 상으로 볼때 명백히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는 얘기겠죠. 하지만 국어 시간에 이렇게 배우셨을 겁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라고 하면 절대 안된다구요. 물론 한국말은 띄어 쓰기가 곧 띄어 읽기가 되고, 이 띄어 읽기에 따라서 뜻이 바뀝니다.


따라서 아무래도 더딘 외국어를 말할 때 일수록

I'm able to speak English.

아임 에이블 투 스피크 잉글리쉬.


라고 또박또박 정성껏 말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이해를 하지 못하면, 괜스레 주눅이 들거나 되려 화를 내거나 둘 중에 하나죠. 자신감이 좀 적은 분들은 내가 발음을 너무 못했나 보다 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분들은 이 쉬운 말을 왜 이해 못하는거지? 하고 상대방의 불성실한 태도에 괘씸해 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서 띄어 쓰기는 단 하나의 기능을 합니다. 단어와 단어를 구분하는 기능이죠. 띄어 읽으라는 표시도 아니고, 띄어 쓰기에 따른 미묘한 뜻의 차이도 없습니다. 무조건 단어와 단어 사이는 띄웁니다. 예외도 없고 특별한 의미도 없습니다.


따라서 읽을 때는

I'mabletospeakenglish.

아이메이블투스피킹글리쉬.


가 되죠.


영어 좀 배웠다 하시는 분들은 바로 '연음' 얘기구나 하고 무릎을 치실 텐데요. 재밌는 건 연음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사실이죠. 사실 한국말에도 연음이 있고, 띄어쓰기가 없으면 여지없이 연음 현상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굳이 연음을 신경 안써도 띄어쓰기만 다 지워두면 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연음으로 인한 소리의 차이는 정말 큽니다.


이런 차이는 한국어를 미숙하게 하는 영어권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더 쉽게 이해가 갑니다. 누군가 "그러며니를해라" 라고 말한다면 이해가 가시나요? (한번 소리 내어 읽어보세요.)


띄어 쓰기가 단어 사이의 공백에 불과한 사람들은 "그러면 일을 해라" 하지 않고 "그러며니를해라" 라고 말합니다. 물론 주의를 기울여 들어보면 어떤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알아 듣기 어렵고 생소하게 들릴 수 밖에 없는데, "아임 에이블 투 스피크 잉글리쉬"라고 나름 정확하게 또박또박 말하면 영어 원어민에게는 역으로 "그러며니를해라" 와 같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저희 아버지가 운동을 다니시면서 회원 번호인 XX406 라는 번호를 말할 때마다 직원들이 꼭 되묻는다며 뭐가 문제인거 같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406

포어 오우 식스


라고 하시더군요. 참고로 연속되는 숫자를 읽을 때 숫자 0은 보통 "오우"라고 읽습니다.


띄어 쓰기를 살펴보기 위해 소리나는 대로 적어보면

Four o six

포어 오우 식스


가 되겠죠. 문제가 있죠? Four 를 한글로 굳이 적자면 포어가 되지만 사실 마지막 "R" 은 /ㄹ/ 에 가까운 소리입니다. 물론 마지막 소리가 되면 잘 들리지 않지만, 첫소리가 되면 다르죠. Radio 를 /에이디오/ 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붙여 읽으면 /포로우식스/ 가 되야 합니다.


그 후 한참 뒤에 아버지가 요즘엔

Fourosix

포로우식스


라고 하니 항상 한번에 알아 듣더라고 기분좋게 말씀하셔서, 왠지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이 납니다.


느끼셨겠지만, 누구도 Radio 를 /에이디오/ 라고 읽지 않듯이 Fourosix 라고 적어두면 자연스레 포로우식스라고 읽게 되죠. 그렇다고 띄어쓰기를 실제로 표기하지 않거나 있는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읽는 연습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순히 발상의 전환이기 때문이죠.


사실 앞으로 할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작은 차이이지만 하나의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진 후에는 다른 방식을 이해하거나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저는 영어를 잘 하려면 영어를 많이 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냥 많이만 하는게 아니고, 뭘 좀 알고 많이하면 더 큰 도움이 되겠죠. 


사실 띄어 읽지 않기를 반복하다 보면, 영어 듣기의 어려움도 상당 부분 해결됩니다. 문장이 어떻게 소리로 바뀌는지 익히고 나면, 올바른 소리에 익숙해져서 자연히 잘 들리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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